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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40. <부정공>학생공휘병진(진선)묘표(學生公諱秉鎭(進善)墓表)
1. 문헌 목록 〉21. 21世 〉42. <부정공>소송공휘사현묘갈명(小松公諱司鉉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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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부정공>근농재공휘몽현묘갈명(勤農齋公諱夢鉉墓碣銘)
勤農齋公諱夢鉉墓碣銘 初諱夢鉉字允弼號勤農齋趙氏之籍玉川系出于高麗門下待中諱璋而聯世冠冕爲東方著姓三傳之諱元吉玉川府院君諡忠獻子諱瑜典農副正二傳之諱智崙梅竹公成三問薦除厚陵參奉出爲參禮道察訪兄弟四人築相好亭于謙川之上日夕寝處友愛湛樂三傳諱大春平原縣監乙巳士禍見幾晦述築亭漾碧江上與金河西白玉峰鄭松江諸賢有唱酬三傳諱時聖當丙子亂與三從進士時一再從進士時述同謀倡義遭内外艱守喪未果於公八世祖也高祖諱成夏曾祖諱昌淳祖諱一根考諱冑燁妣金海金氏在安女公哲宗辛酉二月六日生而以三女中一男受父母之鍾愛自幼能知事父母未嘗有子弟過嘗其父以山訟横逮于浴川監獄例一日一食但以菽麥渾飯一顆如小我拳者公知其父之飢然家貧且遠措手無策乃朝暮乞飯于城中以供之畫夜伏于獄門城中婦女憐其情相興之輪番供飯且各訴其冤于縣官月餘其父得赦自後益知事親之不可得以久也故一言一事無違親志山樵水漁甘旨闕其有下安節暫不離側憂形于色遭二艱攀擗號泣如不欲生晨昏上墳不以風雨廢每直忌辰哭泣如袒括勤農桑節衣食家力稍肥先納父母爲土此其孝之顚末而鄕黨宗族所嘗稱道者也光復前庚午三月十二日卒墓住岩面大龜村西麓乾風亭申原配金海金氏斗源女乙丑二月十二日生辛未十月十六日卒墓合墳一男淵元三女竹山安興煥昌寧曺圭澤延日鄭先源孫男東恂東膳外孫男宗鎬曺出雲鎬鄭出噫公之致誠赦其父與夫梁人吉翂之乞代宥其父相爲伯仲然翂則有旌公則無旌何也蓋以所遭之時所居之國之不同也雖然在公自盡其子職而己奚足以旌否爲損益也哉公墓方治石長孫東恂抱其族姪所爲狀而來求顯刻之辭辭之不獲撮而爲之銘曰 九龜山之窈窕而明娓孝子趙公萬年之幽宅刻玆蕪辭于五尺貞珉戒爾樵牧勿爲之躑躅 光復後丁丑三月下旬 坡平 尹丁鍑 撰 근농재공휘몽현묘갈명(勤農齋公諱夢鉉墓碣銘) 공의 휘는 몽현이요 자는 윤필이요 호는 근농재이시다. 조씨의 본관은 옥천이니 계통이 고려 문하시중 휘 장으로 비롯하여 대대로 벼슬이 높으니 우리나라에 나타난 성씨가 되었다. 삼전하여 휘는 원길이니 옥천부원군인데 시호는 충헌이요 아들의 휘는 유인데 벼슬은 전부정이요 이전의 휘 지윤은 매죽공 성삼문 추천으로 후능참봉을 제수하여 찰방이 되셨으며 형제 四人이 상호정을 겸천위에 세워 아침 저녁으로 베개와 이불을 같이하며 우애담락 하였고 삼전의 휘 대춘은 평원현감으로 乙巳사화때 몇번이나 임천에 종적을 감추며 정자몇칸을 양벽강위에 세우고 김하서 백운봉 정송강등 여러 현인들과 시도 읊으고 난세도 비관하였으며 삼전의 휘 시성은 丙子난을 당하여 삼종 진사 휘 시일과 재종 진사 휘 시술로 같이 창의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양친의 상사를 당하여 거상중 결과를 이루지 못하니 公에게 팔세조이시다. 고조의 휘는 성하요 증조의 휘는 창손이요 조의 휘는 일근이요 고의 휘는 주엽이며, 비는 김해김씨니 재안의 딸이시다. 公께서는 철종 辛酉二月六日에 출생하시니 삼녀 일남으로 부모의 총애를 받았으나 어릴때로부터 능히 부모 섬길줄 알아 일찍 자제의 허물이 있지 않았다. 그 언젠가 부친께서 산송 재판건으로 욕천감옥에 구금되니 감옥의 규칙이 하루에 한때 밥을 주는데 다만 보리와 콩 섞은밥 작은아이 주먹만한 한덩이를 주니 公이 그 아버지의 배고품을 알았으나 집도 가난하고 길이 멀어 속수무책이라 이리하여 아침 저녁으로 성중에 밥을 빌어서 공양하고 밤 낮으로 감옥문 밖에 엎드리니 성중 부녀자들이 그 정성을 가련하게 여겨 서로 다투어 번갈아 밥을 제공하고 또 각자 그 억울함을 현감에게 하소연하니 약 일개월쯤 되어 그 아버지가 사면 석방되었다. 그후로 더욱 어버이 섬김이 옳은줄 알았다. 이러므로서 일언 일사도 부모님 뜻을 어기지 않았고 산에 땔나무하고 물에 고기잡아 맛있는 반찬을 거르지 않았으며 또 환절기에는 잠시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얼굴빛을 근심하였고 양친초상을 당하여 가슴을 치며 부르짖어 통곡을 살고싶지 않은 것같이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성묘를 비바람에도 한번도 궐하지 않고 매양 기제사에도 곡읍을 화살촉에 찔린 것 같이 하였으며 농사와 양잠에 부지런하고 의식을 절약하여 가세가 점점 넉넉하니 먼저 부모님의 제 위토를 마련하니 이에 그 효도의 시작과 끝을 향당이나 종족이 오래전부터 칭송한 바라 광복전 경오 삼월십이일 별세하여 주암면 대구마을 서쪽동산 건풍정 신좌에 안장하였고 배는 김해김씨 두원의 딸이니 을축 이월 십이일에 출생하여 신미 시월 십육일 별세하여 묘는 합분하였다. 일남은 종원이요 삼녀는 죽산 안흥환과 창원 조규택과 연일 정선원이며 손남은 동순 동선이요 외손남에 종호는 조씨소생이요 운호는 정씨소생이라 아! 장하도다 公의 천출효성으로 그 아버지 죄를 사면시키지 않았는가 옛날 양나라 사람 길분의 애걸로 아비죄를 대죄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보면 길분과 조몽현은 서로 꼭같은 효자라 하겠다. 그러나 길분은 효자문이 있고 조몽현은 효자문이 없음은 무슨까닭인가, 대개 태어난 때와 각각 사는 나라가 같지 않은 때문이다. 비록 그러나 公에 있어서는 스스로 그 아들의 직분을 다 하였으니 어찌 족히 효자문 있고 없음에 무슨 차별이 있으리요 公의 묘에 바야흐로 빗돌을 세우려할제 장손 동순이 그 족질이 지은바 행장 글을 끼어안고 나에게 찾아와 비에 세길 글을 요청하거늘 사양타 못하고 대략 그 행적을 모아 새기노니 왈, 구귀산이 요조하고 아름다움이여 효자조공의 만년의 유택이라, 이 잘하지 못한 글로 다섯자 빗돌에 새기노라, 너의 초군 목동에게 경계하노니 밟아 뭉개지 말지어다. 광복후 정축 삼월 下旬에 파평 윤정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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